원효대사

관리자
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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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는 신라시대의 스님으로 성(姓)은 설(薛)이다. 스님 나이 32세 되던 해인 진덕여왕 때 황룡사(黃龍寺)에서 불문에 귀의(歸依)하였다. 문무왕 때 의상(義相)과 함께 당(唐)으로 유학을 떠났다. 가는 도중 당항성(唐項城) 한 고총(古?)에서 머물 때에 한밤중 심한 갈증을 느끼고 깨끗한 그릇에 담긴 맑고 시원한 물을 마셨으나 아침이 되어 그것이 사람의 해골에 담긴 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대사는 크게 깨달아 사물 자체에는 정(淨) ? 부정(不淨)이 없고 오직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을 뿐이라고 하고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되돌아와 분황사에 있으면서 독자적으로 통불교를 제창하여 불교의 보급에 헌신하고자 하였다.

그러던 중, 요석공주(瑤石公主)를 만나 설총을 낳았다. 이때부터 대사는 파계하여 승복을 벗고 소성거사(小性居士)를 자처하며 세속의 온갖 신고(辛苦)와 열락(悅樂)에 얽매이지 않고 초연히 자연을 즐기는 삶을 살았다. 말년에는 『금강삼매경』을 풀이하며 참선(參禪)과 저술로서 세월을 보냈다.

다인(茶人)으로서의 원효와 삶의 모습은 이규보(李奎報)의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 속에 있는 원효방(元曉房)의 설화(현재 전라도 부안 변산에 소재)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이규보의 다음의 시 역시 그러한 원효의 모습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산을 따라 위태로운 다리들을 건너고
조심조심 발을 겹쳐 실 같은 길을 가네
위엔 백길의 산마루 있으니
원효가 일찍이 집지어 살던 곳
신령스런 자취 어디로 사라졌고
남긴 잔영만 화폭에 남아 있네
다천에 맑고 깨끗한 물 괴었으니
마시매 그 맛 젖과 같구나
이곳 그 옛날에는 물이 나오지 않아
스님들이 살아갈 수 없었다는데
원효대사가 한번 와서 살고 난 뒤엔
바위 구멍에서 단물이 솟아났네
우리 선사가 높은 도를 이어받아
짧은 갈초의 옷을 입고 이곳에 살았으니
생각건대 팔척쯤 되는 방에
한 쌍의 신발이 있을 뿐이로다
시중드는 자도 없이
홀로 앉아 세월을 보냈구나
원효가 다시 태어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