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국사

관리자
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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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제일의 선승(禪僧)으로 보조국사(普照國師)의 법통을 이어 받은 진각국사는 법명이 혜심(慧甚), 자호는 무의자(無衣子)로서 차를 즐겼던 다승 가운데 한 사람이다.

스님은 속가(俗家)에서는 어머니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효도하였고 출가한 후에는 스승을 극진히 섬겼다. 스승인 보조국사가 그의 됨됨을 알고 수선사(修禪社)의 자리를 물려주려 하자 이를 극구 사양하였다. 그래도 권하자 스님은 지리산으로 숨어 자취를 감추었으나 스승인 선사가 입적한 뒤 나라에서 조칙(詔敕)으로 명을 내려 제2대 국사(國師)로 임명하니 이에 마지못하여 산에서 나와 그에 따랐을 정도로 고귀한 덕을 갖춘 스님이었다.

특히 스님이 28세 되던 해, 보조국사를 뵈러 암자를 오르던 중, 스승이 시자(侍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어 바람결에 차 끓는 향내음이 풍겨왔을 때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고 한다.


시자 부르는 스님의 음성

솔숲 안개 속에 메아리치고

차 끓이는 그윽한 향내음

돌길 바람에 잔잔히 전해오누나


이 시는 많은 차에 관한 시중에서 그 백미로 꼽혀지고 있다. 즉 이 시에는 물외한(物外閑)이라는 이름의 도인(道人)이자 차를 즐긴 다승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를 더 들면, 다음의 시에는 스님이 견성오도(見性悟道)하여 시간과 공간에 구애됨이 없이, 도덕관념이나 일상생활의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았던 모습이 잘 묘사되고 있다. 풍류자족한 도인(道人)의 생활이란 바로 이런 생활을 두고 한 말이리라.


오봉산 앞 옛 바위굴

그 안에 전물이라 부르는 한 암자 있으니

내 이 암자에 깃들어 활개치노니

다만 크게 웃을 뿐 말하기 어렵네

이 빠진 찻잔과 발 부러진 솥으로

죽 끓이고 차 끓이며 날을 보내네

본디 게을러 쓸지 않고 뽑지도 않으니

뜨락에 잡초 우거져 무릎을 덮네.

늦게 일어나니 새벽 인시(寅時)를 모르고

일찍 잠드니 황혼의 술시(戌時)를 못 기다리네.

얼굴 안 씻고 머리도 깍지 않으며

경전 안보고 계율도 지키지 않으며

조상에 예배 않고 부처에 절 않나니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겨 무슨 까닭이냐 물으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이라 답하리라.

조용히 하고 조용히 비밀을 지켜

집안의 허물을 밖으로 드러내지 말지어라.

마야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