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관리자
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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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제, 법제, 지리, 경학(經學)에 걸친 대학자이며 문신으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그는 어릴 때 이미 신동(神童)임을 인정받고 성장하여 순탄하게 높은 관직에까지 올랐으나, 1800년을 전후하여 천주교에 상관, 천주교에 대한 박해와 더불어 강진(康津)으로 유배되고 만다. 그는 그곳에서 산록에 서실을 짓고 이를 ‘다산서실(茶山書室)’이라 이름하고 시작(詩作)과 저술에만 전념하며 18년 동안 살았다. 그때 나온 저술들로 『경세유표(經世遺表)』,『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를 비롯한 수많은 역작이 있다.
정약용은 43살 때 10살 아래인 대둔사(大屯寺)의 아암 혜장(兒庵 惠欌, 1772-1811) 스님을 만나고부터 차 생활에 심취하게 된다. 아암에게 주역을 가르쳐 주고 차를 얻어마시며 서로의 정분을 쌓았다. 또한 정약용은 48세(45809)때 24살인 초의(草衣)와 만났는데, 초의는 다산을 덕업이 나라 안에서 으뜸가고 문질(文質)이 빛나는 스승이라 일컬었다. 다산은 초의에게 유학(儒學)과 시도(詩道)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다산은 차나무를 재배하고 관리하여 차를 중국의 말과 바꾸어 나라 살림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다마(茶馬) 무역을 주장했고 중국의 차세와 전매 제도를 역사적으로 고찰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차에 관한 전문 서적인 『동다기(東茶記)』를 비롯하여 다시와 차에 관한 글 40여 편을 지어 우리 차의 중흥에 크게 기여하였다.

혜장상인에게 차 얻기를 바라다

듣자니 설름골에는 예부터 좋은 차가 난다네
보리이삭 팰 철이 오면
한 잎 두 잎 새싹이 자란다오
궁하게 사는 사람 채식에 버릇되니
노린내 비린내 나는 고기 먹을 뜻 없노라
돼지고기와 닭죽 같은
호사스런 음식 먹기 어렵도다
현벽병의 고통이 있고
때때로 술을 마셔 깨지 않기 때문이라오
바라오니 스님의 숲에 있는 차
육우의 차솔에 조금만 채워주소서
베풀어 주시면 내병 물리치려니
나룻배로 건너줌과 어찌 다르리오
법대로 불에 쪼여 말리어
물에 넣으면 그 차빛 맑기도 하리라